시선이 닿는 곳마다 온통 너였다. 마키시마 유스케는 과도하게 감성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온갖 곳에 네가 머물러있었다. 제 핸드폰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가 책상 머리로 밀었다. 네가 말을 걸고, 핸드폰 번호를 달라고 했던 때가 기억이 났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애매한 단발에, 앳된 티가 가득한 네 얼굴이 떠올랐다. 순간 끔찍할 정도로 차오르는 무언가에 마키시마는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고 그대로 숨을 멈췄다. 심장이 뛰는 느낌이 생생하게 와닿았다.

 

심장이 과하게 뛸 때면 언제나 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산 꼭대기에 올라서 골 라인을 넘은 직후처럼 심장이 뛰었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은 자전거 위에서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속이 울렁거려서 구역질이 났다. 과하게 심장이 뛰면 늘 뒤따르는 구역질이었지만 이 기분이 싫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안장의 위에서 느끼는 구역질은 언제나 쾌감이 따랐다. 1등으로 골 라인을 따내든, 따내지 못하든, 결국 정상을 재패했다는 쾌감이 등줄기를 짜릿하게 만들었다. 그대로 심장을 뱉어내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앞, 혹은 뒤, 그것도 아니면 옆에는 네가 있었다. 언제나. 다시금 속이 울렁거렸다. 결국 내쉰 숨이 심장의 두근거림을 조금 느릿하게 만들었다.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조금은 울렁거림이 멎을지 고민하다가 눈을 감았다. 눈을 둘 곳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네가 머물던 이 곳에서,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너를 이 곳에서 머물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뒤늦은 후회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까맣게 변해버린 시야가 너를 떠올리게 했다. 까만 네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결 좋은 그것이 제 눈 앞에서 흔들리는 게 좋았다. 가까이에서 네 머리카락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만질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네 곁에서는 만족이 되었고, 행복이 되었다. 사랑을 나누며 네가 끊임없이 퍼부었던 입맞춤도. 사랑스럽다는 듯이 불렀던 애칭 조차도, 민망하다는 말로 감정을 회피했지만 그 모든 것은 행복이었다.

 

마키시마는 생각을 이어가다가 문득 머리가 한 순간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그 시점을 기점으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시 추억을 더듬어보려고 해도, 눈을 떠도, 그 어떤 것에 시선을 두어도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마키시마는 결국 입 밖으로 생각을 되뇌기 시작했다. 내가 토도와 무엇을 했더라. 하나씩 입 밖으로 뱉기 시작하자, 다시금 떠오르는 생각에 마키시마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너와 함께 손을 잡았고, 영화를 보러 갔었고, 자전거가 아닌, 걸어서 산책을 하기도 했고, 클라임이 아닌 라이딩을 하기도 했고, 같은 자리에 누웠고, 숨결을 나누기도 했고, 우는 너를 내 품에서 달래기도 했고, 반대로 네 품에서 울기도 했고, 내 무릎에 누워 즐겁다는 듯 웃는 너를 타박하기도 했고, 조잘거리는 입술을 막으려 입맞춤도 했었고. 마키시마는 서서히 젖어가는 뺨에 결국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책상 머리로 밀었던 핸드폰을 집으려다가 포기했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예의는 지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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