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라 전력_ 새벽

 

 

장례식장에서 나와 집에 도착한 것은 새벽 2시가 조금 넘어간 시각이었다. 문득, 방이 굉장히 넓어 보인다는 뻔한 생각을 하며 신카이 하야토는 현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그는 처음으로 아라키타 야스토모의 여동생을 만났고, 그녀들은 아라키타에게 애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남자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제 와서 남자를 사귀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고, 그 동안 오빠를 사랑해줘서 고마웠다고 흔해 빠진 말을 했다. 울어서 핼쑥해진 얼굴로 여동생 중 조금 큰 쪽은 웃으려고 했고 가지고 있는 오빠의 물건이 있다면 후에 유품을 정리하며 가지러 갈 테니 수고스럽겠지만 정리를 부탁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했다. 신카이는 정리를 끝내고 후에 연락한다고 부탁을 받아들이며 등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현관부터 차근차근 정리해가며 박스에 물건을 담을 생각이었다. 신카이는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결국 현관문 앞에서 주저앉았다. 당장 옆에 신발장이 있고, 거기에 그의 신발이 들어있어서 신발장을 열고 신발을 꺼내어 박스에 넣으면 시작이었는데 신카이는 신발장을 열지 못했다. 물건을 정리하려고 가져온 박스를 바라보며 신카이는 차라리 조각조각 토막이 나도 좋으니 제가 그 박스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주저앉은 바닥이 차갑지 않고 굴곡이 있다고 생각했더니 당장 무릎 아래에 신발 한 짝이 깔려있었다. 정신이 없어서 바닥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군청색의 단화. 저와 데이트를 할 때면, 조금 단정하게 차려입고 가야할 때면 언제나 신발장에서 나와 있던 그것이 제 무릎 밑에 깔려있었다. 신카이는 손이 떨렸다. 단화를 집어 들고, 박스에 넣으려다가 결국 다시 현관에 내려놓았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신을 수 있게 현관의 앞에 신발을 정리해놓고 야스토모, 하고 불렀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신카이는 속이 뒤틀리는 것을 느끼며 결국 신발장을 열었다. 아라키타의 신발은 단화와 그가 죽었을 때 신고 있었던 운동화, 그리고 편하게 신었던 슬리퍼와 정말 드물게 신었던 정장 구두가 전부였다. 신카이는 정장 구두를 먼저 박스에 담았고, 이어서 슬리퍼를 담았다. 까맣기만 한 신발 두 켤레가 박스를 무겁게 했다. 딱 그만큼, 신카이의 슬픔이 무거워져갔다. 신카이는 몸을 일으키고 현관을 지나면 바로 있던 욕실에 들어갔다. 욕실 물품의 대부분은 공용으로 쓰던 것이었지만 신카이는 더 이상 그것을 쓸 수 없음을 알았다. 한참동안 욕실을 쓰지 않아 욕실은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말라있었다. 반쯤 빈 샴푸통과, 삼분의 일쯤 쓴 린스. 전혀 쓰지 않은 트리트먼트와 비누를 박스에 담았다. 트리트먼트는 사은품으로 받아온 것이었다. 아라키타는 그것을 받으며 짐만 늘었다고 투덜거렸다. 신카이는 박스가 플라스틱이라 다행이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라도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올라오는 무언가를 참을 수 없었다. 다음으로 박스에 담을 것은 칫솔이었다. 신카이의 칫솔은 주황색, 아라키타의 칫솔은 파란색이었고 신카이는 망설임 없이 그 두 개를 모두 넣었다. 그리고 칫솔을 새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주황색도, 파란색도 아닌 전혀 다른 색으로. 기왕이면 욕실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보이는 누구도 쓰지 않을 특이한 색이 좋겠다고. 욕실의 스펀지는 조각조각 가위질해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다음으로 가까운 것은 옷장이었다. 가장 처음 신발장 열기를 망설였던 것처럼 신카이는 옷장의 앞에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끔찍할 정도로 진한 체취가 제 목을 졸라올 것이 분명했다. 목을 조르고 눈물샘을 쥐어 터트릴 것이다. 터트리다 못해 초라할 정도로 체내의 수분을 짜낼 것이다. 신카이는 옷장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고 침을 삼키고 눈을 감았다가, 숨을 참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입술을 물었다. 무의식적으로 터져 나오려는 숨과, 의미모를 헛웃음을 참으려는 행동이었다. 신카이는 옷장을 나눠 쓰지 않았었다면 제 옷, 아라키타의 옷 할 것 없이 박스에 들어찼으리라 생각했다. 눈에 들어차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계속하여 숨을 참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입을 열고 숨을 들이 쉬자 신카이는 맥없이 무너져버렸다. 아라키타 특유의 체향.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다던 부드럽고 밀도 있는 향. 가끔 피우던 담배의 쓴 냄새와 묘한 소독약 냄새. 스킨의 향과, 같은 제품을 쓰는데도 전혀 다른 향이 나던 바디 워시. 모든 것이 얽히고설켜 실타래를 한움큼 삼킨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숨이 막혔지만 신카이는 모든 옷을 박스에 담고 옷장을 닫았다. 평생 그 앞에서 머무를 수 없었다.

차근차근 남은 물건들을 정리해나가던 신카이는 생각보다 집에 아라키타의 물건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라키타는 짐이 늘어나면 후에 귀찮아질 게 뻔하다며 당장 필요한 옷 같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물건들을 본가에 놓고 다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사실을 되새기며 신카이는 마지막으로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반이 조금 넘게 찬 박스를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 그 곳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 신카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연구원으로 취직을 하며 보지 못했던 비앙키가 자전거 거치대에 매달려있었다. 안장의 위에는 하코네의 져지가 널려있었다. 이게, . 신카이는 말을 제대로 맺지 못하고 몇 번이나 더듬거렸다. . 맺음 없는 말을 추락시키며 우두커니 제자리에 서 있던 신카이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하코네의 져지를 박스에 넣었다. 자전거는 박스에 넣을 수 없었으니 후에 여동생들에게 연락하여 마음대로 하라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앙키를 본 후 신카이는 뚜렷하게 나아진 표정으로 차마 담지 못했던 현관의 단화까지 박스에 넣고 테이프로 봉했다. 그리고 다시 베란다로 가, 비앙키의 앞에 앉았다. 손을 뻗어 프레임의 흠집이라던가, 찢어진 안장을 매만졌다. 누군가에게 말이라도 거는 것처럼 신카이는 입을 열었다. 주어는 아라키타의 이름이었다. 있지, 야스토모. 짐 정리 끝냈어. 생각보다 빨리 끝나더라고. 야스토모의 물건은 박스도 못 채웠는데 흔적은 집을 채우고도 남아서 내일 방도 빼려고 생각중이야. ? ……글쎄. 만약 야스토모랑 헤어진 거였다면. 야스토모는 뭐라고 했을까. 다른 사람이랑 만나고, 잘 살라고 말했을까? 오늘 장례식장에 진파치도, 주이치도, 다른 하코네의 후배들과 소호쿠의 사람들도 왔었더라고. 다들 눈이 벌게서 야스토모가 그 동안 나 아닌 다른 사람들한테도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알 것 같더라고.

신카이는 한참을 그렇게 말하다 무릎 사이로 얼굴을 떨궜다. 장례식장에서 엄청 울고 싶었는데 야스토모의 여동생들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밝게 인사해주려고 하시더라고. 그 앞에서 차마 울 수도 없었고, 울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혼자가 되면 조금 울어볼까. 했는데. ……. 긴 침묵의 끝에 신카이는 말을 끝맺었다. 역시 운다고 해도 야스토모가 돌아오는 건 아니니까. 내일 보자, 야스토모.

베란다를 등진 신카이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베란다 바깥으로 떨어진 그림자가 불을 끄자 귀신처럼 사라졌다. 신카이는 방을 빠져나가면서 여동생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음 전화는 받지 못할 테니, 이곳으로 연락을 부탁한다며 후쿠토미의 번호를 알려주었다. 터무니없이 긴 새벽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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