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네가 안녕이라고 말했다. 새삼스럽게 무슨 인사냐, 생각했다가 문득 방금 전까지 내가 침대 위에서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싱글벙글하며 평소처럼 나사 하나 빠진 얼굴로 웃고 있는지 아니면 입을 꾹 다문채로 내 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무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각도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너를 보며 건방지게 꿈에도 나올 줄 안다며 네 손목을 잡고 몸을 돌렸다. 우는 네 얼굴을 보면서 나는 이게 자각몽인지 예지몽인지 팔자에도 없는 이상한 고민을 해야 했다.

, 망할. 벌써 두 시냐. 라는 말을 뱉어가면서 핸드폰 시계를 보고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에 든 것이 방금 전이었다. 피곤함에 절어 떠지지도 않는 눈을 억지로 비비며 열었다. 침대 시트를 더듬거려가며 핸드폰을 찾았고 홈 버튼을 누르자 앞의 05가 가장 먼저 보였다. 족히 한 시간은 뒤척인 것 같았으니 오래 잤다고 해도 두 시간 남짓이었다. 지금 다시 눈을 감는다고 하더라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쉬는 날이니 피곤해지면 낮잠이라도 자면 되는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자 욕실로 향했고, 칫솔을 들고, 폼클렌징으로 이를 닦았다. 입 안에서 부풀어오는 거품과 비릿하고 쓴 맛에 뒤늦게 치약을 묻힌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입을 헹구었다. 혀뿌리까지 텁텁하고 느글거렸다. 다시 치약을 올리고 뒷수습 겸 이를 닦았지만 폼클렌징의 찝찝한 맛이 가시지 않았다. 꿈의 뒤끝과 똑같구나. 생각하면서 그 꿈이 혹여나 예지몽일 수도 있지 않을까, 했다.

자각몽이라고 하기에는 나는 그 녀석의 우는 얼굴이 싫었고, 예지몽이라고 하기에는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없었다. 눈만 마주치면 배알도 없는 사람마냥 웃기에 바쁜 녀석이었다. 집에 가기 싫다고, 헤어지기 싫다고 엉엉 울면서 안녕이라고 말하는 건 볼 수도 있겠지만.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벱시를 꺼내며 꿈에서 마주쳤던 녀석의 표정을 생각했다. 무미건조하게 눈물만 뚝뚝 떨어지던 여린 비취색의 눈동자가 꺼림칙했다. 병뚜껑을 따다가 손을 멈추었고 결국 바닥에 떨어트렸다. ……시발. 조용히 중얼거리며 다시 병을 집어 들었다. 탄산이 튀는 소리가 병 안에서 지속되었다. 연다면 콜라가 터져 나올 것이 뻔했다. 마른 목을 그냥 생수로 달래고 탄산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려 병을 들고서 침대 귀퉁이로 가 걸터앉았다. 핸드폰을 만지작대며 네 연락처를 가운데에 두고 몇 번이나 그 주위를 오고갔다. 깨어 있을 수도, 자고 있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일이 꽤 바빠졌다고 했으니까 깨어 있을 확률이 더 높았다. 결국 통화버튼을 눌렀다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 전화를 했냐고 물어본다면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꿈 때문에 그랬다고 하면 너는 분명히 내용을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 분명했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대, 내가 고양이라는 건 아니지만. , 가끔 죽을 것 같지 않냐. 라는 말을 농담조로 뱉고는 했을 만큼, 너는 궁금한 것을 참지 못했고 나는 뭔데, 라고 묻는 네 물음에 답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꿈속에서 네가 울었다. 라는 말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네가 뱉을 난감한 목소리라거나 그런 것이 짐작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안녕이라고 말하고 울었다. 라는 말은 어려웠다. 장난스럽게 예지몽이네, 따위의 말을 뱉을 것 같았다.

시답잖은 꿈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기면 되는 일이었다. 굳이 한 구석에 품고 계속해서 생각할 거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우는 네 얼굴이 생각나는 이유는. 이제 탄산이 가라앉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병뚜껑을 열었다. 내가 널 사랑했다. 손이 미끄러졌고 병이 손에서 떨어졌다. 한 번, 병이 바닥에 튕겼다가 풀썩 쓰러졌다. 콜라가 바닥을 적시다 못해 방을 꽉 채울 기세로 꿀럭거리며 쏟아지는데 수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안녕이라고 말하며 우는 네 얼굴을 싫어했고, 그런 꿈을 꾸었다고 말을 할, 전화를 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머리가 동 트는 새벽마냥 허옇게 변해갔다. 나는 널 사랑한다고 인정하며 밖에서 우는 아침 새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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