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반복되는 것은 의미 모를 악몽이었다. 나오는 것은 두 사람 뿐이었다. 나와 당신. 이제 당신이라는 벽 있는 호칭으로 부르기 어색한 내 사랑. 그리고 나. 악몽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에 꿈의 내용은 간단했지만, 그것이 며칠이나 반복되어가니 정신을 좀먹어가는 것은 당연했다. 꿈 속에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내가 당신에게 다가가면 당신은 매몰차게 나를 내치고, 나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당신의 표정이라도 평소와 같았으면 좋으련만, 당신의 표정은 한없이 딱딱하게 굳어있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이 아부토를 데리고 내게서 멀어지고, 아부토는 동정 어린 눈길로 나를 쳐다보다가 당신을 따라가고, 그 상황에서 한 없이 울다보면 언제나 베개가 눈물인지 식은땀인지 모를 것으로 축축하게 젖어서 나는 우울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꿈의 내용이라도 지워지면 조금은 편했을까. 꿈은 돌에 새긴 각인처럼 점점 진해지고 선명해졌다. 이제는 깨고나면 잠깐동안은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가 비어있는 내 옆과, 시끄러운 바깥을 느끼면 아 꿈이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바깥의 시끄러운 목소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분명했고, 만약 당신이 조금이라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나는 이 곳에 누워있지도 못했을테니. 나는 꿈에서 깨고나면 축축해진 얼굴을 옷소매로 문질러 멀쩡하게 만들었다. 젖은 베개는 반대로 돌려놓았다.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당신이 있을 함선의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키? 하고 당신이 물어오면 나는 짖궂게 웃으면서 시끄러워서 깼다는 말로 당신의 물음을 거짓으로 답하곤 했다. 그 말을 듣고있던 아부토는 잘 잤어, 아가씨? 하고 괜히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가 카무이한테 죽여버린다는 재미없는 농담이나 한번 듣고, 나는 그 농담 아닌 농담에 웃으며 우울한 시작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날 밤도 악몽은 슬금슬금 침대 밑에서부터 기어올라오더니 기어코 내 목을 졸랐다. 또 당신에게 폭언을 듣고, 당신이 멀어져갔다. 아부토의 시선도 이제는 대수롭지 않았다. 이제는 또 한바탕 울겠구나. 하고서 어느정도 체념을 하기도 했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상황이라지만 나에게 당신과 헤어진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고통이라 그 고통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당신이 멀어져서 보이지 않을 때쯤 나는 눈물 한 두방울을 뚝뚝 떨어트리다가 언제나와 같이 눈물의 호수에 잠겼고, 평소와는 다르게 그 호수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당신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당신이 잡고 있는 팔이 욱신거렸다. 나는 작게 웃고서는 당신에게 속삭였다.
"카무이, 팔 아파요."
그 말을 듣고서 그제야 당신은 화들짝 놀라면서 내 팔에서 손을 떼고는 애매하게 허리를 굽히고 서있던 자세를 고치고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몇 번이고 손으로 축축한 내 눈가를 닦아주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바보야. 나 엄청 놀랐어."
"응? 왜요?"
"평소에는 함선으로 전쟁을 하든 행성을 때려부수든 한번 자면 꼼짝도 않고 자는 애가, 요새 들어서 몇 번이고 시끄럽다고 깨니까. 무슨 일이 있겠구나, 하긴 했지만…."
당신은 중간에 말을 끊더니 나를 한참 쳐다보고는 울어서 부었을 것이 분명한 눈가를 또 다시 어루만졌다.
"걱정이 되어서 키가 깰 시간에 들어와보니까 소리도 없이 눈 꼭 감고 눈물만 뚝뚝 흘리는데 어떻게 안 놀라겠어."
"그냥, 안 좋은 꿈을 꿨어요."
"요새 계속?"
"…오늘만."
내 말을 듣고서 당신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나를 꼭 끌어안았다. 거짓말일 것이 분명한 말에 당신은 그저 내 등을 살살 쓸어주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그러다가 숨이 막힐 정도로 세게 끌어안고서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금씩 말을 이어나갔다.
"이 거짓말쟁이. 많이 무서웠어? 내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 나 엄청 센 카무이라고? 멋지고, 잘생기고, 싸움도 잘하는 카무이."
"그 카무이가 나한테 떠나는 꿈인데, 어떻게 안 무서울수가 있어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꿈이었어."
"……."
여전히 날 세게 안은 채,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세게 안아준다면 갈비뼈가 부러질지도 모르겠다. 하는 쓸데없는 생각으로 내 머릿속이 가득 찰 무렵, 당신은 느릿하게 입을 뗐다. 어쩌지, 이러면 안 되는데 나 지금 좀 기쁜 것 같아. 당신의 생각치도 못한 말에 나는 당신의 품을 벗어나려 당신을 밀어냈고, 당신은 그런 날 더 꽉 안으면서 오해하지 마, 라고 덧붙였다. 정말 갈비뼈가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난… 난 키가 내가 떠날까봐 이렇게 불안해한다는 게, 기뻐.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절대 안 떠나. 키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때까지, 혹은."
내가 죽을 때까지. 당신은 무서운 말을 덧붙이며 나를 안았던 것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은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것을 못본 척 하고서는 침대에서 스스로 일어났다. 당신은 울상이 된 얼굴로 키 너무해. 하고 투덜거렸고 나는 웃으며 당신을 꼭 안고서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덕분에 이제는 악몽을 더 이상 꾸지 않을 것 같아. 그리고…
"아까 갈비뼈 부러질 뻔 했어요. 그대로 죽는 줄 알았어."
당신이 달가워하지 않을 말을 하고서는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당신은 미묘한 얼굴을 한 채 바깥으로 나와 나를 잡더니만 옷이나 갈아입고 와. 키부리지 말고. 하며 방으로 돌려보낼 뿐이었다. 방으로 돌아려니 중얼거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여간, 키는 로맨틱이라는 걸 모른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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