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글 전력 21- 널 과묵하게 사랑하면 안 됐어.

 

 

 

 

 

꽉 졸라맨 넥타이가 답답했다. 젤로 넘긴 머리도, 몸에 딱 맞는 정장도, 그 위에 걸친 점잖아 보이는 코트도 전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내년이면 겨우 이십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나이였고 너와 그 사람은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여도 묘하게 핀트가 어긋나는 부분이 많아서 미안한 생각이지만 금방 헤어질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너와 그 사람이 사귄 지 1년이 넘어가고, 2년이 넘어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을 하면서 너는 자주 결혼 얘기를 꺼냈다. 아무리 봐도 너보다는 네 남자친구가 아깝지 않냐. 네가 결혼 얘기를 할 때마다 나는 입버릇처럼 그 말을 꺼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늘 웃음으로 그 말을 넘겼다. 내가 처음으로 네가 아깝다고 한 날, 너는 나에게 청첩장을 내밀었다.

 

순백의 두꺼운 종이카드 한가운데에 쓰여 있는 네 이름이 낯설었다. 결혼식을 진행하는 장소와 약도, 날짜가 적혀있는, 어딜 봐도 평범한 청첩장이었는데 시선이 도저히 돌아가지 않았다. 청첩장을 내밀고 네 입술에 감도는 미소에 나는 청첩장을 주머니에 넣고 웃었다. , 드디어 가냐? 입꼬리가 뻐근해서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축하한다. 그럴 리 없었다. 축하할 리가 없잖아. 입으로 내뱉는 말과 진짜 내뱉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서 엇갈렸다. 가족들 빼고는 너한테 제일 먼저 주는 거지! 의기양양한 네 목소리가 귀를 찢어발겨도 모자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찌푸려진 미간과는 다르게 입꼬리는 계속 올라가있어야 했다. 넌 친구가 나밖에 없잖아. 그렇게 나는 네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고 너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면서도 그 손을 쳐내지 않았다. 친구끼리의 스킨십이었다. 단순한 친구끼리의.

 

결혼식 당일, 나는 면접 이외에는 찾지 않던 단정함을 찾아가며 네 앞에 섰다. 신부 대기실의 너는 혼자였다. 과하게 일찍 온 건지, 아니면 모두 다녀간 후인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제 시간에 맞춰서 결혼식장에 온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네 모습이 생각보다 반짝이고 눈부셔서 나는 눈이 시렸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는지 너는 따라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가 화장이 번진다면서 면봉으로 눈물을 찍어내었다. , 결혼은 내가 하는데 왜 네가 울려고 그러냐? 네 말에 나는 여느 때처럼 머리를 건드리려다 공들였을 게 당연한 세팅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손을 거뒀다.

 

 

 

이 망나니가 시집을 간다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 네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서는 곤란했다. 즐거운 일에는 함께 축하를 해주는 것이 친구의 도리였다. 너와 잠시 수다를 떨다가 신부 대기실을 나왔다. 결혼식장 근처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샀다. 몇 달이나 참았던 것이었다.

 

막상 결혼식 자체는 기억나는 게 몇 가지 없었다. 걷는 네 걸음이 위태해서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다는 것과, 샹들리에 아래에서 보는 네 모습이 예뻤다는 거, 네가 대놓고 부케를 나한테 던졌다는 것과, 함께 사진을 찍자는 말에 거절한 것.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그게 고작이었다. 사진을 찍기 전 너와 짧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간다는 인사만 짧게 전하고 나설 예정이었다. 너는 내 팔을 붙잡았다. 어디 가?

 

 

 

어디 가긴, 집에 간다.”

사진 안 찍고? 나 너 그렇게 차려입은 거 처음 봤는데!”

나도 처음 봤어.”

 

 

 

너 그렇게 예쁜 거. 뒷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자 너는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이 모습은 일생의 한 번이면 족하다고 덧붙였다. 나는 내 팔을 잡은 네 손을 치우고는 간다며 손을 흔들었다.

 

 

 

, 존나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당연하지.”

 

 

 

밝게 웃는 네 모습이 끈질기게 눈에 밟혔다. 나오자마자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깊게 연기를 빨아들였다. 몇 번을 축하한다는 소리를 내뱉고, 행복해야 한다는 소리를 내뱉었는데 그 중 진심인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좋은 일은 축하해줘야 친구 된 도리라던데. 그 말을 입에서 계속 굴리다가 담뱃재 터는 것을 깜빡한 나머지 와이셔츠에 가벼운 그을림이 생겼다. 혀를 차면서 엄지 손가락을 몇 번이고 그을림을 문댔다. 이런다고 지워질 것이 아니었지만 마냥 멍하니 있는 것이 벅찼다. 작은 욕지거리가 끊임없이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