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글 전력 24회 - 시선이 마주칠 때.
밤하늘이 유독 어두웠다. 날이 흐린 탓에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아라키타 야스토모는 취기가 잔뜩 오른 몸을 이끌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다가 주머니를 뒤졌다. 핸드폰도, 지갑도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손끝에 만져지지 않았다. 집 열쇠 어디다가 뒀더라.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몇 번이고 점퍼 주머니와 바지 주머니를 뒤졌지만 익숙한 쇠의 느낌이 닿지를 않았다. 놓고 올 곳이라고는 학과 건물에 있는 제 사물함과 술집밖엔 없을 텐데 술집에서는 지갑도, 핸드폰도, 주머니에 들어있는 쓰레기 하나도 꺼낼 일이 없었기에 흘렸을 일이 전무했다. 남은 것은 사물함밖에 없을 텐데. 아라키타는 연신 감기는 눈과 풀리는 다리를 몇 번이고 느끼고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열쇠가 사물함에 있는 것이라면 누군가 집 안에 들어올 걱정은 물론이고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느즈막하게 가지러 간다고 제 사물함을 부수고 집 열쇠를 가져갈 사람 따위도 당연히 없었다. 지금은 열쇠보다 쉬는 게 먼저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집이 어디더라. 아라키타는 핸드폰을 꺼내고 주소록 스크롤을 몇 번이고 넘기다가 두 사람의 연락처 중간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제 자취방에서 굴러가도 10분이 안 걸리는 곳과 학과 건물에서 가장 가까운 곳. 애초에 집에 가려던 길이었으니 어디가 가장 가까운지는 술에 푹 절어있는 상태의 아라키타라도 답을 낼 수 있었다. 아라키타는 연락처 하나를 꾹 누르고 전화를 걸었다. 늘 핸드폰을 잡고 있는 녀석이라 평소 아라키타가 연락을 할 때면 신호가 두세 번 정도만 가도 바로 목소리가 들렸는데 오늘따라 음성 사서함의 안내가 나올 때까지 연락을 받지 않았다. 아라키타는 금방이라도 멀어질 것 같은 정신을 꽉 잡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한 번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신호가 몇 번이나 이어지고 이제 끊기려나, 하는 찰나에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잤냐? 취기에 젖어버린 낮은 목소리에 그녀는 허, 하고 짧게 숨을 뱉고는 대답했다. 아니, 자려고 씻고 있었다. 다 씻지도 못했는데 벨소리 듣고 나온거쟝. ……그러냐, 야, 나 지금 간다. 집 열쇠 놓고 왔어. 끊어질 듯 말 듯 한 나른한 목소리가 아라키타의 입술에서 새어나왔다. 뭐? 나 지금 자려고 했다니까. 아니, 그 전에 어딘데. 5분…… 5분 정도 걸려. 아라키타는 그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반대편에서 당황함이 서린 소리가 몇 번이고 들렸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장 길바닥에서 쓰러져 잘 것 같은 신세를 모면해야했다.
그녀의 집에 도착했을 때, 아라키타는 반쯤 정신을 놓았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닌 상태였다. 술은 뒤지려고 마시는 것이란 말을 술자리마다 달고 다녔던 그였지만 과제로 인한 밤샘 피로와 취기가 함께 오르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버젓이 있는 초인종을 버려두고 문을 두드리자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이 안쪽에서 들려왔다. 5분 걸린다고 미리 말했잖아, 멍청아. 아라키타는 문에 이마를 기대고 중얼거렸다. 문이 열리며 그녀는 안쪽으로 쏟아지듯 넘어오는 아라키타의 몸을 겨우 받아들고는 아라키타가 중얼거린 말에 대꾸했다.
“씻고 있었다고.”
“……아씨, 차가워. 너 머리 덜 말렸냐?”
아라키타는 그녀에게 기대자마자 풍기는 시트러스 향에 인상을 찌푸렸다. 제 목을 간질이는 머리카락에서 물기가 떨어졌다. 씻는 …… 하, 됐다. 뭘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냐. 그녀의 말에 아라키타는 별 다른 대꾸를 하지 않다고 문득 고개를 들었다. 덜 마른 머리카락 보다 물기가 서린 눈동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술 마신다면 여자가 예뻐보인다더니, 진짜인가보네. 아라키타는 실없는 생각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느릿하게 눈을 껌벅였다. 마주친 시선에 어떠한 감정도 실려 있지 않다가 서서히 감정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발그레하게 온기가 오른 볼과 비슷하게 색이 어린 입술, 젖은 머리카락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짧은 머리끝에서 아래로 아래로 자리를 옮겨 목선을 타고 실내복을 적셨다. 당황스러움과, 난감함과, 조금의 무언가. 아라키타는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급하게 그녀의 품에서 떨어지려 뒷걸음질 치다가 제 발에 걸려 주저앉았다. 넌, 넌, 여자애가 겁도 없이! 흘러나오는 제 말에 그녀의 표정이 의아함과 짜증으로 찌푸려졌다.
“네가 온다며.”
“……하, 시발. 야, 킨조 불러라. 나 데려가라고 그래.”
그녀는 어이없음에 헛웃음을 치다가도 휴대폰을 들어서 익숙한 전화번호를 눌렀다. 연락처를 찾는 것보다 직접 번호를 누르는 것이 빨랐다. 몇 번의 신호가 흐르고 킨조는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는 말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있지, 야스토모가 자기 좀 데려가라는데. 킨조의 목소리에서 드물게 당황스러움이 배어나왔다. 그녀는 결국 아라키타에게 휴대폰을 넘겼다. 아라키타가 사정 설명 아닌 사정 설명을 하고 킨조가 아라키타를 데려갈 때까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0분이 걸렸다. 그녀는 그 때까지 절대 시선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아라키타를 보고 어깨를 으쓱이고는 제 할 일을 끝냈다. 킨조는 그녀의 집을 나서며 벌게진 아라키타의 얼굴을 보고는 잠시 입을 열었다가 꾹 다물었다. 아마도 술기운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이겠지.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것이 제가 확실하게 짐작하는 무언가라고 하더라도. 킨조는 아라키타를 부축하면서 그에게 풍겼던 시트러스 향이 아직도 코에 감도는 기분이 들었다. 코가 간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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