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다 켄시 합작 – Mad head love
꽃무릇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정확히는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라는 과거형이 옳은 말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함선 내부의 화단에서 그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을 꽃들이 지금 제 방의 앞에 뿌리 채 뽑혀서 꺾여 있었다. 함선 내부의 화단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관리하는 것이니. 그것에 손을 댔다는 것은 누군가 자신에게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키는 빠짐없이 목이 꺾인 꽃무릇을 한 송이씩 집어 들며 수를 세었다. 다섯 송이. 잡티 하나 없는 고운 미간에 홈이 생겼다. 얇은 입술이 몇 번이고 달싹였다. 그 입술에서 새어나올 이름은 하나 밖에 없었다. 달리 말하자면 키에게 이런 시비를 걸 사람도 한 사람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카무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평이한 목소리로 키는 중얼거렸다. 송이 수가 차례대로 늘어나고 있으니, 오늘까지 해서 총 15송이의 꽃무릇이 화단에서 뽑혀 나왔다. 남은 꽃이 여섯 송이가 될까. 키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화단에 남아있는 다른 꽃도 없으리라. 제 우산을 손에 꼭 쥐고 키는 발걸음을 옮겼다. 꺾을 꽃이 없으면 제 부하의 목이라도 꺾어서 방 앞에 쌓아 놓을 그였지만, 그것은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슬퍼한다면 제 동족을 지극히 아끼는 아부토 정도나 슬퍼하겠지.
늦었네, 늦잠이라도 잤나봐? 누구 덕분에 꿈자리가 조금 사나웠어요. 아끼던 꽃이 전부 꺾이는 꿈을 꿨거든요. 제 것보다 색이 진한 분홍색의 머리카락이 눈 앞에서 하늘거렸다. 별다른 대화를 나누고 싶은 기분은 없었다. 키는 들고 있던 우산을 모로 세워 몸을 기댔다가 제 말에 능청스럽게 반응하는 카무이의 대답을 듣고 그의 쪽으로 총구를 옮겼다. 그래? 꿈이 아닐 텐데, 카무이의 말이 끝나자 키는 망설임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꾸준히 꽃을 꺾어 제 심기를 거스르는 것도, 제가 싫어할 소리만 골라하는 것도, 모두 저와 싸우려 혈안이 되어 달려드는 것이니 적당히 장난에 어울려주고 끝내는 것이 좋았다. 서 있던 자리에서 몸을 옮기며 총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그것을 쉽게 피해버린 카무이는 이윽고 키에게 달려들었다. 우산은 필요하지 않았다. 야토는 몸이 곧 무기였고, 카무이는 무엇보다 야토라는 단어에 잘 어울리는 남성이었다. 키의 우산과 카무이의 손목이 충돌했다. 충돌에 키의 중심이 흐트러지자 카무이는 놓치지 않고 키의 다리에 뒤꿈치를 내리꽂으려 다리를 들었고 키는 일부러 몸을 무너트려 공격을 피했다. 숨을 한 번 몰아 쉬는 사이에 몇 번이고 공방이 오고 갔다. 주먹이나 다리를 내지르는 바람에도 살이 아려오니 방심을 한다면 몸이 뚫리거나 팔 다리 하나 정도는 날아가도 좋을 싸움이었다.
격양된 목소리로 카무이는 소리쳤다. 끔찍하게 잘 싸우잖아. 왜 귀찮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싸우는 거야? 아, 역시 좋아해. 좋아해, 키. 키의 우산이 카무이의 목을 꿰뚫으려 직선으로 거침없이 나아갔지만 카무이는 우산의 끝부분을 잡고 돌려 키의 몸을 비껴 내었다. 우산에 힘을 실은 만큼 엉뚱한 방향으로 힘이 빠져나가자 금세 균형을 잡거나 추스를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넘어진다. 키가 인상을 찌푸리고 발끝에 힘을 가해 몸을 튕겨 올렸다. 텀블링을 하는 것처럼 뛰어오르던 몸이 한 손에 잡아 채였다. 순식간에 몸이 땅으로 꺼졌다. 키가 등을 부딪힌 땅이 움푹 패였지만 카무이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얼굴을 향해 주먹을 뻗었고, 키가 가까스로 카무이의 손목을 잡아 그것을 멈추자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힘들어 보이니까 오늘은 여기서 그만둘까나. 멍이 들 정도로 꽉 붙잡힌 제 손목을 흔들면서 카무이는 얼굴에 미소를 띠웠다. 하, 키가 짧은 숨을 뱉고는 그의 손목을 놓았다. 마지막에 땅에 내리 꽂혀진 것이 생각보다 충격이 컸다. 찌푸려진 인상이 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워보이는 저 얼굴이 밉상이라 빈정거리는 말 정도는 해주고 싶었다. 키는 잠시 앓는 소리를 내었다가 중얼거렸다. 이제 꽃도 없어서 시비도 못 걸 텐데. 그래? 그럼 대원들 목이라도 부러트려서 방 앞에다 쌓아 놓지, 뭐. 난 상관없지만 아부토 씨가 싫어할 거예요. 그 쪽이랑 싸우고 싶어서 그래요? 아부토와는 예전에 싸워봤으니 됐어. 그럼 뭘 부러트려야 하나. 키의 말에 대꾸하며 카무이는 자유로워진 두 손을 키의 목에 올려놓았다. 이대로 네 목을 부러트린다고 협박하면 앞으로도 싸워줄래? 마음대로 해요. 차라리 지금 부러트릴래요? 그렇다면 몇 주는 안 싸워도 좋을 거 아냐. 질렸다는 말투로 제 말에 대답하는 키를 보며 카무이는 목에 올려놓은 손을 서서히 쥐었다. 어느 정도로 쥐어야 숨이 막히고, 뼈가 부러질 지는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제 밑의 그녀도 마찬가지리라. 슬슬 호흡이 어려울 텐데도 평온한 표정으로 저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키를 보며 카무이는 그대로 느릿하게 고개를 내렸다.
입술과 입술이 부딪혔다. 몸을 부딪혀가며 싸운 것도 애정이라지만 이것은 더욱 더 명백한 애정의 표현이었다. 말랑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몸처럼 단단하지도 않은 애매한 감촉의 입술이 제 입술에 닿자 키는 인상을 찌푸렸다. 타액이 오고 가거나 몇 번이고 새처럼 쪼아대지도 않았다. 그저 두 입술을 꾹 마주 대고 있는 것이 전부인 애정 표현이었다. 키는 입을 벌려 카무이의 아랫입술을 제 입에 넣고는 이로 그것을 갉작대다가 송곳니로 터트려버렸다. 입 안에 퍼지는 비릿함에 카무이의 입술이 떨어져나갔다. 인상을 쓰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고 그저 엄지 손가락으로 제 아랫입술을 몇 번이고 만져 피를 닦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키는 멎어가는 고통에 몸을 일으키며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었다. 카무이는 키의 몸 위에서 제 몸을 일으키며 천진하게 말을 뱉었다. 아, 꽃도 없으니 이제는 뭘로 시비를 걸지. ……악취미, 나한테 왜 그래요. 정말? 글쎄, 좋아하니까? 아니다. 사랑하니까! 그건 정말 헛소리예요. 카무이. 이렇게 나쁘게 굴면서 그런 말이 나와요? 카무이는 키의 말에 동그랗게 눈을 떴다가 느릿하게 껌벅이고 이내 눈을 접어가며 웃었다. 사랑하니까 나쁘게 구는 거지. 이래도 키는 날 싫어하지 않을 거잖아? 조금 나쁘게 굴면 어때? 키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역시 악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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