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선의 짧은 소리에 아라키타는 무심코 그쪽을 쳐다보았다. 목도리를 가지고 무슨 장난을 치던 건지 칭칭 감아놨더니만 도로 풀려버린 목도리를 보고는 아라키타는 뒤에 있던 위치 그대로 선의 팔에 목을 두르고서 목도리를 다듬어주었다. 이 나이 되도록 목도리도 못 매고, 바보냐? 짜증이 섞인 목소리에 비해 다정한 손길에 선은 장난기 가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풀면 엄마가 와서 다시 묶어주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누굴 엄마 취급을 하는 거야. 평행선. 고개를 들어 턱을 제 머리 위로 올리는 아라키타를 보고 선은 불안함에 도망을 가려고 했으나 제 목도리가 아라키타의 손에 잡혀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역시나, 턱으로 제 머리를 꾹 눌러오는 아라키타의 행동에 선은 기브 업을 외치며 입을 다물었다. 투덜거리면서도 뒤처리는 확실하다. 끝부분의 길이까지 맞춰주며 목도리를 다시 매 준 아라키타는 목에 둘렀던 팔을 풀고는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목도리로 또 장난을 친다면 기껏 예쁘게 매놓은 것이 또 풀릴 것이다. 손, 아라키타는 개한테 명령이라도 하듯 한 손바닥을 보이며 그렇게 말했고 선은 자연스레 손 하나를 그 위에 올렸다가 뒤늦게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개냐?”
“엉, 퍼그.”
“내가 퍼그보다 귀여운데.”
“너 퍼그 욕하지 마라.”
저게 진짜. 선은 아라키타의 다리를 그대로 차버리고 싶었으나 저 다리가 상당히 딱딱하다는 걸 많은 경험을 통해 학습한 상태였다. 평소의 워커라면 모르나, 천이 얇은 오늘의 운동화라면 제 발이 더 아플 거다. 보복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선은 남은 한 손으로 목도리를 풀어버리려다가 아라키타가 제 손을 꽉 잡아오는 것을 느끼고는 그를 쳐다보았다. 너, 그거 풀면, 죽는다. 진짜. 표정 한 번 살벌해라. 선은 목도리의 끝을 잡았던 한 손을 조심스레 주머니에 넣었다. 만족스레 절 쳐다보는 아라키타의 표정이 언짢았지만 다시 목도리를 풀어버린다면 이번에는 목도리로 목을 꽉꽉 졸라맬지도 몰랐다. 내 목숨은 소중하니까. 선은 제가 워커를 신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졌다.
으이구, 목도리도 못 매는 우리 퍼그 새끼. 나름대로 애정을 섞어서 말했겠지만 선은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 너도 넥타이 못 매잖아. 난 넥타이는 맬 줄 알아. 아라키타는 잔뜩 볼멘 선의 목소리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선을 쳐다보았다. 목도리랑 넥타이가 같냐? 너는 지금 길 위에서 아줌마 자전거 타는 거랑, 세 개짜리 롤러에서 로드 레이서에 오르는 걸 같은 선상에 둔 거야. 아라키타의 비유에 선은 비유도 꼭 저 같은 걸 쓴다며 그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어찌되었든 제가 목도리를 못 매는 것도, 아라키타가 넥타이를 못 매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왜 하코네 학원의 넥타이는 모양이 잡혀있는 고무줄 넥타이였던 건지. 아쉬움에 선은 무심코 혀를 찼다.
“아침마다 생색을 낼 수 있었을 텐데.”
“…아침? 학교 넥타이?”
“응.”
“그럼 내가 넥타이 매는법을 배웠겠지. 매일 매야하는데.”
“아, 그런가.”
아라키타는 그 말에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목도리가 있는 걸 보면 쭉 하고 다녔다는 소리인데 얘는 왜 아직 목도리를 못 매지? 선은 계속하여 자신을 쳐다보는 아라키타의 시선에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왜? 입을 벙긋거려가며 묻자 아라키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넌 목도리가 있는데 왜 목도리를 못 매냐? 맨날 하고 다니던 거 아냐?”
“올해 처음 매봤는데? 선물 받아서.”
“아, 그런 거냐.”
어떤 머저리가 목도리도 못 매는 띨띨이한테 목도리를 선물해줬냐. 아라키타는 그새 삐뚤어진 선의 목도리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아라키타야, 아라키타야. 익숙한 호칭이 절 불러오자 아라키타는 아까 선이 했던 것처럼 입을 벙긋거리며 왜, 하고 답했다.
“이거 네가 작년 생일 선물로 준 거야.”
“…….”
“맨날 콜록대는 계집애가 왜 목도리도 안 하고 다니냐. 네 목이 불쌍하지도 않냐. 내년부터는 꼭 매고 다녀. 하면서.”
“…….”
“참고로 더 말하자면 나는 그 해 네 생일선물로 지금 네가 끼고 있는 장갑을 선물했지.”
“그 정도는 나도 기억한다고.”
어떤 머저리. 선은 아라키타가 했던 말을 반복했다. 아라키타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물론 작년 생일이라면 1년 가까이 된 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가 준 선물을 기억도 못하다니, 심지어 어떤 머저리가 목도리도 못 매는 띨띨이한테 선물했냐는 부가 설명까지 착실하게 붙였으니, 아라키타는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가까스로 변명을 생각해 낸 아라키타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머저리, 머저리라는 단어를 넘겨줘도 가장 죄악감이 들지 않을 동창이 누가 있을까.
“토, 토도가 고른 거다. 그거.”
“그래, 그래.”
아라키타는 스스로 말해놓고도 형용할 수 없는 민망함에 사로잡혔다. 젠장, 넥타이를 맬 줄 아는 놈이 목도리를 못 맬 줄 누가 알았냐고. 그래그래, 알겠어. 선은 아라키타의 말에 건성건성 대답해갔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으니 충격 받을 것도 없었다. 그나저나 목도리를 계속 쓰려면 목도리를 계속 매줄 사람이 필요할 텐데, 선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걸음을 멈췄다. 아라키타의 걸음 또한 멈췄다. 껌 밟았냐? 어느새 멀쩡해진 아라키타가 물어오자, 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곧바로 말을 꺼냈다.
“좋은 생각이 났어. 내가 목도리를 못 매고, 네가 넥타이를 못 매니까. 평생 서로 매주면 되는 거 아니야?”
“……프로포즈냐?”
“응?”
선은 뭔 소리냐며 눈을 껌벅거렸다. 붉어진 제 귀가 민망할 정도라 아라키타는 한숨을 쉬었다. 이 멍청이를 어떻게 하면 좋냐. 아라키타의 중얼거림에 선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좋은 방법을 듣고 멍청이라니. 너무하잖아. 너 뇌가 없냐. 그냥 서로한테 가르쳐주면 될 거 아니야. ……아! ……멍청이. 선은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대신 넌 천재인가봐. 라는 짧은 말로 대답할 뿐이었다.
'글 > D'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키] 인외 합작 (0) | 2015.12.17 |
---|---|
[아라키타 드림] 2015. 12. 16 (0) | 2015.12.16 |
[아라키타 드림] 허그 데이 (0) | 2015.12.14 |
[마키사야토도] 2015. 12. 13 (0) | 2015.12.13 |
[아라키타 드림] 2015. 12. 12 (0) | 2015.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