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일본까지 경유 1회로 16시간. 시차 7시간. 이에미츠와 길이 갈려 전용기를 타고 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현실에 바질도, 예리엘도 난감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본래라면 일본에 도착한 뒤 시간에 맞추어 가벼운 생일 파티라도 할 예정이었던 두 사람은 도착하고 나서 마주한 달력의 24일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고, 이윽고 본인들이 미처 시차를 생각하지 못했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마주보고 쓴웃음을 짓는 게 고작이었던 것이다. 바질은 함께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었는데, 아씨께 죄송하게 되었네요. 라며 타인의 서운함을 걱정하는 말을 우선적으로 던졌고 예리엘은 그런 바질의 말에 옅게 미소 지으며 저보다는 바질 스스로에게 더 미안해야죠. 하며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렇지만 생일은 내년에도 다시 오는 거니까요. 생일보다도 아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드리고 싶었는데. 눈썹의 끝을 조록 늘어트리며 푸른 눈망울보다 더 짙은 슬픔을 슬쩍슬쩍 떨어트리는 바질의 표정에 예리엘은 핸드폰의 화면을 잠깐 확인했다가 바질의 앞에 보여주었다. 바질, 아직 제 시계는 23일이에요. 이제 겨우 한 시간 남짓 남았고, 일본은 아침이지만……. 예리엘이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조금은 장난기 있는 웃음으로 바질을 이끌었다. 그런 말도 있잖아요? 잠자리에 들기 까지는 그 날이 끝난 게 아니라고. 오늘 하루를 전부 생일축하에 써볼까요?


우선 아침을 먹고, 천천히 다음 일정을 생각해봐요. 캐리어를 끌며 분주하게 발걸음을 움직이는 예리엘을 뒤따르며 바질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그렇지만 아씨, 오늘은 사와다 도령과의 일정이 있어서. 그렇지만 저녁 일정이잖아요? 이제 아침 6시예요. 짐을 부탁하러 간다고 해도 이른 아침부터 가는 쪽이 실례일 테고. 단호한 예리엘의 말에 바질은 그녀가 뜻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래 이렇게 저돌적인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 일이라면 가끔은 귀여운 고집을 부리기도 하는 예리엘의 모습에 바질은 사랑스러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녀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상태의 그녀라면 말릴 수도 없었고, 말릴 생각도 없었다. 바질은 으음, 하고 얕은 소리를 내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씨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침 메뉴부터 함께 골라볼까요. 바질의 긍정적인 대답에 예리엘이 좋은 생각이라며 함께 긍정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24일의 아침을 시작했지만 새벽 6시의 공항에 만족스러울 정도로 아침을 해결할 수 있는 가게가 있을 리 없었다. 바질과 예리엘은 24시간 오픈되어있는 카페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팬케이크를 겉면에 두른 핫도그와 기호에 맞는 음료로 아침을 해결했다. 그 후 남은 음료로 목을 축이며 메모장과 볼펜을 꺼내어 하고 싶은 것 몇 개를 적고 오늘 안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누었다. 산책과 점심 식사, 케이크에 초를 꼽고 축하 노래를 부르기, 생일 선물 사기. 누가 썼는지 명확하게 보이는 각각의 항목에 둘은 리스트를 접고 그저 마음가는대로 오늘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생일 축하를 명목으로 함께하는 하루이니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선물이라거나 기념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좋을 것이다. 하루가 터무니없이 짧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트레이를 정리하였다.


한산한 아침 시간대는 공원에 앉아 시간을 때우거나 아직도 복잡하다고 생각되는 지하철의 노선도 같은 것을 정리하였다. 대부분의 이동은 차를 이용하거나 걸어 다녔으니 대중교통이 익숙해질리 없었다. 오전의 공원은 운동을 위해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뒤를 느긋하게 따르며 예리엘은 바질에게 생일 선물로 혹시 받고 싶은 것은 없는지, 케이크는 무슨 맛을 좋아하는지 같은 것을 물어보았고 바질은 아씨와 함께라면 다 좋아요, 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사람들이 거리에 보이고 시내가 시끌벅적해지자 바질과 예리엘은 제과점에 들어가 케이크를 골랐고 조금 일찍 사와다 가로 향해 들고 온 케이크로 바질의 생일 파티를 하였으며 파티가 끝난 이후에는 본래의 일정까지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으니 소화도 할 겸 가볍게 근처를 둘러보고 오겠다는 말을 했다. 사와다 츠나요시는 길을 잃어버리면 곤란할 테니 제가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리본의 폭력적인 만류에 그것을 그만두어야했다. 눈치도 없는 다메츠나. 뒤에서 들리는 높은 톤의 맹맹한 목소리에 바질은 민망한 것처럼 웃었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근처를 둘러보고 오겠다고 하여도 사와다 가의 근처에는 상점가와 나미모리 중학교, 그리고 이미 망해버려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수목원 겸 동물원이 전부였다. 조금 더 멀리 간다고 하더라도 고쿠요 중학교나 산 속 같은 곳은 좋게 보아도 산책길이라고 할 수는 없는 코스였다. 나미모리 중학교 내부의 벤치에 자리를 잡고 바질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루를 모조리 생일축하에 써보자는 말을 했어도 실제로 무언가 생일을 기념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케이크를 고르고 생일 파티를 한 것이 전부였다. 바질은 파티는 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거라 했지만 예리엘은 모두에게 축하를 받게 해주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사실, 생일은 태어난 것을 축하받기 위해서 만들어진 날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함께 생일을 축하하는 것도 좋았지만 바질이 축하받는 모습을 가장 보고 싶었어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차분하게 제 행복을 바라는 모습에 바질은 역시 그녀를 당해내기에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무어라 말을 이어가기가 힘들어 바질은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뒤뜰에서 떨어진 꽃 한 송이를 주워 왔다. 아씨,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사람에게 축하를 받지 못했습니다. 돌아오자마자 던진 바질의 말에 예리엘이 가볍게 웃었다. 가장 처음은 놓쳐버렸으니 가장 마지막에 축하해주고 싶었는데요. 바질이 주워온 꽃을 의아하게 쳐다보다가도 제 앞에 서있는 바질을 올려다보며 생일 축하해요, 바질. 조용히 읊조렸다. 바질은 축하의 말을 듣고 감사해요, 아씨. 하며 허리를 숙였다. 예리엘과 아주 가까운 곳까지 닿았다가 예리엘의 머리카락을 넘겨 귀에다 꽃을 꽂아주며 떨어졌다. 다시 벤치의 옆에 앉으면서 손을 잡고 조금은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지금까지의 일도 충분히 생일선물 같았지만, 역시 아씨 쪽이 제게는 가장 큰 선물이라……. 미처 말끝을 닫지 못하고 손을 잡는다. 마주잡은 손의 열기가 뜨끈해 바질은 작게 헛기침했다. 저는…… 아씨를 만나기 위해 태어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축하받고, 아씨와 함께 있는 지금이 정말 기뻐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아씨. 고개를 틀고 서로의 고개가 가까워졌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나고 바질은 흔해빠진 말이라지만, 하며 웃었다. 꽃보다 아씨가 아름다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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