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형당한다며?”

 

헤레이스는 주점에 앉아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쿠데타가 벌어지면서 죽어나간 모든 시체를 거두고서, 폭군을 옥에 가두었다. 주점에서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쿠데타가 성공하고 일주일 뒤였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헤레이스의 손톱은 톱니바퀴처럼 울퉁불퉁하고 곳곳에 피가 맺혀있었다. 손톱을 뜯어가며 억지로 진정해봤자 그것은 한 순간이었다. 주점의 사내들은 술이 가득 담긴 잔을 부딪혀가며 떠들썩하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 내일 아침이 처형이라지.”

속이 다 후련하네.”

 

사내들은 잔을 비우고서는 술맛이 떨어진다며 더 이상 그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았다. 헤레이스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곗바늘은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느리게 처형을 한다고 하더라도 채 12시간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헤레이스는 식탁에 고개를 처박았다. 심장소리가 귀로 전해졌다. 느릿하게 뛰던 것이, 숨이라도 찬 듯 빠르게 헉헉대고 있었다. 로브의 후드가 귀를 틀어막았다. 귀가 멍해졌다. 심장 소리를 제외하고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헤레이스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눈가가 아렸다. 겨우 찾았더니, 또 이런 꼴이다. 헤레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돈 몇 푼을 식탁에 내려놓고 주점을 나갔다.

밤거리는 조용했다. 마을이 회복되었다고 하더라도, 쿠데타가 끝난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돌아다니는 것은 군인과 비렁뱅이, 부모가 죽어나간 떠돌이 아이들뿐이었다. 헤레이스는 숙소로 잡아놓았던 여관으로 돌아왔다. 2층의 방으로 들어갔지만, 아래층의 시끄러움은 가라앉지 않았다. 아래층은 여관의 식당이 있었다. 그 곳에서도 내일의 처형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딜 가더라도 화젯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헤레이스는 입고 있던 로브를 벗어던지고 딱딱한 침대에 누웠다. 속이 답답해서 잠이 오지 않았지만, 억지로 눈을 감았다. 아침 일찍 처형장으로 나가야했다.

 

 

아침이 밝아오자, 헤레이스는 침대에서 일어나 로브를 입었다. 로브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여관의 바깥으로 나갔다. 어젯밤에 비해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조용하던 거리가 붐비었다. 그 사이를 헤치며, 헤레이스는 처형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보이던 형장이 점점 가까워졌다. 아마 그는 이제 단두대의 사이로 머리를 올리고서는 눈을 감을 것이다. 헤레이스는 또 아려오는 눈가를 대충 쓸었다가 발걸음을 빨리했다. 처형장의 주위로 사람이 몰리는 것을 보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감성에 빠져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처형장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단두대의 날이 올라갔다. 검게 두건을 쓴 남자는 단두대의 날을 갈고서는 그것을 끝으로 올렸다. 형장에 올라가는 계단 쪽이 시끄러웠다. 폭군으로 불렸던 남자는 제 발로 형장에 올랐다. 형장에 올라서자, 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듣기 힘들 정도의 욕설을 뱉었다. 침을 뱉고, 돌을 던졌다. 그는 침에 구두가 더럽혀져도, 돌을 맞아 이마가 찢어져도, 보는 사람이 경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님.”

 

큰 소리로 부를 수는 없었다. 전생의 연인이었다 해도, 이생에서 그는 폭군이었으며, 헤레이스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이름을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었다.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헤레이스는 로브의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그는 단두대에 가까이 다가갔다. 단두대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둥 사이로 머리를 넣었다. 헤레이스는 눈을 감았다.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고정시키고, 막히는 숨을 내쉬었다. 눈을 뜨고 그의 얼굴을 보자, 그는 헤레이스의 쪽을 쳐다보는 것도 같았다. 헤레이스는 마주치는 눈에 눈을 크게 뜨고서는 그의 이름을 벙긋거렸지만, 곧 다른 곳을 보는 그의 시선에,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바로 위에 칼날이 번뜩거리는데도,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욕설을 퍼붓던 사람들은 그 표정에 얼이 빠진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끄러운 소리가 줄어들고, 날아다니던 것들도 사라졌다. 집행인이 단검을 들었다. 관리가 높이 든 팔을 아래로 내리자, 집행인은 단검으로 단두대의 날을 고정하던 밧줄을 끊었다. 날이 떨어지고, 그의 목을 파고들었다. 신음 하나 없이 그의 목은 잘려나갔다.

그의 목이 잘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헤레이스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환호가 가득한 사이로, 헤레이스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았다. 무릎을 바닥에 짓이겼다.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몇 번이나 그의 죽음을 보아서 이제는 무덤덤해질 줄 알았더니 그것은 아니었다. 연인의 죽음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큰 것이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피가, 힘없이 바닥에 내려져있는 몸이, 주인 없는 머리가. 헤레이스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마냥 눈물만 흘리다가 헤레이스는 입을 가로막던 손을 떼었다. 슬픔에 찬 울음소리를 터트렸다. 후드를 뒤집어 쓴 그대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살아생전에도 잘 부르지 않던 이름을, 연이어 불렀다.

 

이반, 이반, 이반.

 

숨이 막혀서 몇 번으로 헐떡거리는데도 눈물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입 안으로도 흘러들어가고, 땅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목이 쉬어 쇳소리가 나왔다. 목에서 맴도는 것이 피인지, 눈물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컥컥 거리면서도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반. 헤레이스는 그렇게, 그의 시체가 거두어지기까지 오열하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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