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2014.08.13

 

 

 

1

 

1년이 넘어갔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멈추지 않는다. 멈췄으면 하는 순간에도 무심하게 흘러가더니, 지나갔으면 하는 순간에는 걸음을 느리게 걷는다. 쓰던 워드의 작업을 멈추고 잠깐 탁자 위의 달력을 쳐다보았다. 1년이 넘어가도, 한참 넘어갔다. 속상할 만도 하고, 투덜거릴 만도 한데, 그렇지 않은 건지 아니면 억지로 숨기고 있는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연구소 안에서 만나도 평소처럼 거는 장난을 받아치기만 할 뿐, 볼 멘 소리도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괘씸한 생각까지 들었다. 겉이 냉담한 그를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려, 묶어놓을까. 하는 생각까지.

물론 현실로 옮길 수는 없었다. 나도, 그도 연구소의 한 축이었기에 없으면 연구소 업무에 지장이 생기니까. 일을 성실하게 하는 그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내 것에 아무런 표식도 없는 것은 더더욱 내 욕구에 지장이 생겼다.

 

 

 

2

 

클로이군.

 

지나가는 걸 보고 가볍게 부른 말인데, 그는 흘려버리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늘 곰팡이라고 놀리는 머리카락이 잎사귀처럼 가볍게 흔들렸다. 같은 초록인데, 내 눈동자와 그의 머리카락은 엄연하게 다른 색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린 채 한참을 쳐다보다 내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으니 다시 가던 길을 가려 고개를 앞으로 향했다.

 

클로이군.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웃으며 그의 행동을 놀렸다.

 

참 상냥한 사람이에요, 클로이군은.

이상한 소리 그만하시고, 가서 일하세요.

 

그렇게 말하더니 짧게 웃어버리고서 그는 또 고개를 돌렸다. 아마 그는 유전자과 업무실로 직행하여 컴퓨터 앞에 앉고 또 엑셀 같은 것을 키고 자판을 두드릴 것이다. 움직이는 그의 걸음에 따라 흰 가운이 흔들린다.

 

이따 밤에, 흡연실로 와줄래요?

 

그가 한참을 걸어가고 나서야 조용히 말한 것이지만, 그는 걸음을 잠깐 멈추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상냥한 사람이다.

 

 

 

3

 

담배, 끊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몇 시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제 시간에 맞추어 흡연실의 유리문을 열었다. 들어오자마자 내뱉은 목소리는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는지, 잠겨있었다.

 

오자마자 잔소리라니, 잔소리꾼.

다 도움 되는 소리입니다.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사탕을 물었다. 주머니에서 다른 하나를 꺼내 건네주니 그는 순순히 받아 껍질을 까고 입안에 넣는다. 사탕만 우물거리고 있으니 그는 여전히 잠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왜 불렀습니까. 이 밤중에.

그냥, 일하기 싫어서 불렀죠.

안 불러도 일은 안 하시잖아요.

 

마땅히 대답할 말은 없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머릿속에 생각이라고는 없었으니까, 또 가만히 있으니 그는 계속 말을 걸어온다.

 

오늘 이상하네요.

그래요?

,

 

이어지는 정적에 결국 그도 말을 끊고서는 흡연실의 유리만 쳐다본다. 유리에는 투명하게 나와 그가 비친다.

 

있잖아요, 클로이군.

.

우리 헤어질까요?

……?

 

그는 미묘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가볍게 웃고서는 나는 가운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농담이에요.

 

말이 끝나자 그의 표정은 미묘함에서, 질 나쁜 농담을 힐책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내어 그의 손에 올려놓았다. 그는 한참 그것을 보다 내가 무안할 정도로, 크게 비웃었다.

 

지금 이거 주려고 그렇게 운을 띄운 거예요?

연인에게 주얼리를 선물하는 건, 소유욕을 의미하는 거래요. 그거 받으면 이제 다시는 못 헤어져요.

 

그에게 준 것과 같은 모양의 그것을 왼손 약지에 끼워,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는 또 웃더니만 자신의 손가락에 그것을 끼웠다. 내가 낀 것과 똑같은 반지를.

 

이제 못 도망쳐요, 클로이군.

반대입니다. 소장님도 이제 헤어지자는 말 못합니다.

 

가만히 반지를 쳐다보다가 그냥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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