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며칠 전에 여름 불꽃축제가 열렸던 기분이었는데, 어느새 또 시간이 갔는지, 가부키쵸의 벽이란 벽은 모두 축제 포스터로 얼룩덜룩 물들어 있었다. 축제라,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스낵 오토세의 맞은 편 골목에는 포스터로도 모자라 현수막이 걸린 상태였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한 불꽃의 향연. 포스터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문장을 보고 긴토키는 코웃음을 쳤다. 불꽃이 다 거기서 거기지. 긴토키는 허리춤의 동야호를 빼들어 간지러운 등을 긁으며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토키가 아무리 저렇게 생각하더라도 이 집에는 축제라는 소식을 들으면 신나게 달려와서 가자고 할 꼬마들이 두 녀석이나 있었다. 녀석들이 집에 도착해서 제 양 팔을 잡고 끌고 가기 전에 긴토키는 이 집에서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간만에 주머니도 두둑한 덕분에 도망을 가려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술집이냐, 파칭코냐. 행복한 고민을 하며 현관문 앞에서 신발을 신으려던 그 때 긴토키는 축제가 시작한다는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으며 문득 바닥에 처박았던 고개를 들었다.


작년 축제 때 누군가 이 문을 닫았던 것 같은데. 그리고 제 스스로 한 생각에 어이가 없어서 마른 웃음을 뱉었다. 문을 닫을 사람은 수 없이 많았다. 당장 제가 닫을 수도 있었고, 신파치도 문을 닫을 수 있었고, 카구라 또한 마찬가지며, 하다못해 사다하루도 문 정도는 닫을 수 있었다. 이러다가 잡힐라. 긴토키는 생각에 빠져있던 머리를 대충 흔들고는 오늘따라 발이 안 들어가는 신발을 바닥에 탁탁 쳐가며 발을 구겨 넣었다. 긴토키가 해결사 사무실의 문을 여는 순간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커다란 불꽃이 눈앞을 장식했다. 빨갛고, 화려하고, 커다란 불꽃이. 긴토키는 멍하니 그 불꽃을 쳐다보고 있다가 그 생각이 어딘가에서 비롯된 것인지 눈치를 채고 말았다. 작년 불꽃 축제 때 지금은 텅 비어있는 제 눈앞에는 예전의 친우가 서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는 아직도 귀신을 무서워하냐며 핀잔을 줬던 것이 이제야 생각났다.


긴토키는 그때의 타카스기와 비슷한 표정으로 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긴토키가 생각하기에 그 날의 끝은 영 좋지 않았었다. 축제를 보러갈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발걸음이 축제의 중심으로 향하고, 나름대로 축제를 즐겼던 것 까지는 좋았지만 마지막에 진선조와 마주쳤던 것이 이유였다. 축제가 다른 의미로 소란스러워졌고 망할 놈의 마요라는 절 잡아서 타카스기랑 무슨 관계냐고 연신 캐물었다. 그 사이에 타카스기는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마땅한 인사도 못하고는 그렇게 축제를 마무리 지었던 것이다. 제가 타카스기라도 다시 축제에 오고 싶어지지는 않는 결말이었다.


, 긴토키가 가볍게 혀를 찼다. 자꾸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는 것을 보니 제가 나이를 먹기는 하나보다. 지금은 타카스기의 생각을 하기보다 녀석들에게 도망가는 것이 먼저였다. 긴토키는 사무실의 나무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 몸을 돌렸고, 그가 계단에 발을 딛기도 전에 아래에서 들려오는 삐걱거리는 계단 소리에 조금은 화색을 띠웠다. 혹시. 긴토키의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고, 마침내 끝자락에 다다르는 순간 계단의 밑에서는 낯익은 얼굴에 제 이름을 소리쳤다.

 



긴쨩!”

, 긴상? 나와계셨네요! 마침 중심거리에서 축제가 열린다고 해서.”

긴쨩도 같이 가자, !”

 



안 가. 긴토키는 올라가던 제 입꼬리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올 리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던 자신이 민망할 정도였다. 그리고 두 녀석은 긴토키의 예상처럼 안 간다는 그의 말을 듣지 않은 건지, 듣고도 못 들은 척 한 건지, 한 팔씩 맡아 잡고는 그를 축제의 중심으로 끌고 갔다.


축제는 작년과 전혀 변함이 없었다. 시끄럽게 연신 터지는 불꽃과, 그것보다 더욱 시끄러운 사람들의 소리. 천막의 앞에서 거북이 낚기, 풍선 낚기 따위를 하는 아이들, 곳곳에서 풍겨오는 달큰한 먹을거리의 냄새. 긴토키는 도망가지도 못하게 연신 제 양 팔을 잡고 있는 신파치와 카구라에게 답답하니 좀 놓으라고 투덜거리면서 억지로 팔을 빼냈다. 둘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작정을 하니 오히려 더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싫은 마음이었다. 긴토키는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절 쳐다보는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지갑에서 천 엔짜리 두 장을 꺼내 한 장씩 손에 쥐어주었다.

 



아껴 써라.”

 



돈을 받자마자 눈앞에서 사라진 꼬마들의 뒷모습을 보며 긴토키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으려다 주위를 꽉 채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앉을 곳을 찾았다. 그러고 보니 녀석이랑 왔을 때에도 이렇게 사람이 많았었는데. 긴토키는 주위를 둘러보다 비어있는 벤치를 보고는 걸어가 그 곳에 주저앉았다. 질색하는 얼굴로 빈 벤치에 앉아서 숨을 돌렸었지. 긴토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무의식적으로 옆을 쳐다 보았고 그곳에는 타카스기가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링고 아메 하나를 들고 있었다. 으응? 긴토키는 어이없음에 눈을 깜박였다. 타카스기? 얼빠진 표정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자 타카스기는 긴토키를 돌아보는 듯 했다가 사라졌다. 환상이었다.


터무니없는 눈의 착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물론 즐거워서 웃는 웃음 따위가 아니었다. 어이가 없었다. 타카스기가 뭐라고 제가 환상까지 보는지. 긴토키는 눈이 피곤한 게 분명하다며 두 눈을 연신 손으로 비비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서 잠이나 자는 게 건강에 이로웠다. 사람들이 꽉 막고 있는 길을 억지로 헤쳐 가며 긴토키는 그나마 한산한 가면 가게의 앞에 도달했다. , 여우 가면. 긴토키는 제 눈앞에 바싹 붙어있는 그것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어이, 긴토키. 바로 옆에서 타카스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삿갓도 모자라 가면을 썼던 것 같기도 했다. 멍하니 서서 뭐하고 있어. 옆에서 목소리가 들리지만 돌아볼 수 없었다. 여우 가면을 쓰고 있는 타카스기가 제 옷을 잡아당기며 걸음을 재촉할 것 같았다. 긴토키. 다시금 타카스기가 제 이름을 불러왔을 때, 긴토키는 결국 고개를 돌렸고 그 곳에는 예상처럼 여우가면을 쓴 타카스기가 제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이건 정말인가. 긴토키는 그에게 손을 뻗었고, 손끝이 닿자마자 환상은 사라졌다. 이쯤 되면 무서울 지경이었다.


인파를 겨우 뚫고 그나마 한산한 가부키쵸의 골목으로 돌아왔을 때, 긴토키는 눈앞에 보이는 스낵 오토세를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몇 걸음만 가면 집이다.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긴토키는 걷고, 또 걷다가 나무 계단을 올랐고, 해결사 사무실의 문 앞에 서있는 타카스기를 보고 헛웃음을 뱉었다. , 하하, .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것도 나름의 추억이라는 거야? 긴토키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아무리 타카스기에게 가까이 다가가도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 때의 타카스기는 옆을 보지 않았으니까. 오롯이 눈앞의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긴토키는 환상을 스쳐 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제 환상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타카스기뿐이었다.

 



긴토키.”



 

이제는 뒤에서도 들리나. 대체 저 환상들이 본인에게 뭘 바라는 건지 긴토키는 알 수 없었다. 같이 에도를 부수자? 그런 의도의 환상이 함께 축제를 즐기고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나? 아니면, 밤이라도 함께 보내자? 스스로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긴토키는 결국 체념하고 연이어 제 이름을 부르는 문 앞의 환상을 쳐다보았다. 찌푸려진 미간에 적색 하오리, 몸을 감싸고 있는 나비 유카타까지 타카스기로 보이지 않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긴토키는 고개를 떨어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다가 환상에게 소리 질렀다.

 



그래! 그래, 인정할게. 타카스기가 보고 싶어. 축제라 더더욱.”

?”

 



인정하면 사라질 줄 알았더니만, 환상은 실감나게도 표정까지 바꾸어가며 긴토키를 놀려대었다. 긴토키는 마치 주정이라도 부리는 양 터벅터벅 환상의 코앞까지 다가가서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그렇지 않은 말들을 뱉었다.

 



보고 싶다고, 인정했으니 이제 그만 좀 사라져. 이런 추억은 없었다고, 망할.”

 



벅벅 긁는 머리에서 피가 흐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긴토키는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를 긁어대었다. 여전히 뚜렷한 타카스기에게 긴토키는 결국 손을 내밀었다. 이러면 억지로라도 사라지겠지. 그리고 자신의 손이 타카스기의 몸에 걸리는 순간 긴토키는 모든 행동을 멈췄다.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린 것처럼 타카스기만을 쳐다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뭘 하는 건지 묻고 싶다만.”

타카스기?”

 



이건 진짜다. 본능적으로 깨닫자마자 긴토키의 얼굴은 목 아래부터 서서히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타카스기는 삿갓을 손가락 끝으로 슬쩍 들어 올리며 그의 변화를 관찰했고, 긴토키는 그대로 문을 닫아버렸다. 타카스기는 문전박대 당한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지 문 밖에서 조용히 읊조렸다.

 



보고 싶다고, 인정했으니 이제 그만 좀 사라져.”

하지 마.”

이런 추억은 없었다고.”

하지 마! 대체 왜 온 거야, 너 테러리스트란 자각은 있냐?! 왜 축제란 축제는 다 돌아다니고 난리냐, 요 녀석아!”

누군가가 보고 싶다고 난리난리를 쳐서 말이지.”

 



긴토키는 결국 문을 열 수 밖에 없었다. 제 앞의 망할 놈이 무어라 더 지껄여댈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안으로 들여 조잘대는 입을 막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들어와라. 긴토키가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자 타카스기는 픽 웃고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안을 향했다. 나름의 복수를 다짐하는 긴토키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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